아무도 묻지 않은 언어에 대해

 처음엔 영어로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딱히 이유를 길게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냥 그래 보였고, 더 멀리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어로 쓰면
어딘가 더 넓은 곳에 놓이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람들,
어쩌면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에게까지
말이 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문장을 쓰다 멈추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 말이 맞는지,
이 표현이 자연스러운지,
조금 더 좋은 단어가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생각보다 번역이 먼저 나왔다.
감정보다 문법이 먼저 떠올랐다.

그게 나쁜 건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조금씩 뒤로 밀렸다.

오늘은 한글로 쓰고 있다.
특별한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냥 문득
지금 떠오른 말이
영어로는 잘 옮겨지지 않을 것 같았다.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느낌”이라는 말은
영어로 쓰려면
괜히 길어진다.

한글로 쓰면
말하다 멈춘 자리 그대로 남겨도 된다.
그게 생각보다 편하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은 아니니까.
잘 읽히지 않아도 괜찮고,
이 문장이 어디까지 닿을지도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 순간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만 남으면 된다.

나중에 이 글을 다시 읽을 때
왜 이런 고민을 했는지는
아마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를 이해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이렇게 잠깐 멈춰 서서
언어 하나를 두고 생각해봤다는 사실만은
남아 있으면 좋겠다.

오늘은 한글이
조금 더 숨이 편하다.

그래서 오늘은
이 언어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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