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무 약속 없는 오후가 좋다
요즘은
일정이 비어 있는 오후가
괜히 마음에 남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 이유도 없고,
누구를 만나야 할 필요도 없는 시간.
예전에는
이런 시간이 생기면
괜히 불안했습니다.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지,
하루를 허투루 쓰고 있는 건 아닐지
스스로를 다그쳤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의 오후는
조금 다릅니다.
시계를 자주 보지 않아도 되고,
다음 일을 미리 떠올리지 않아도 됩니다.
창가에 앉아
빛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만 바라보다가
문득 지금 이 시간이
생각보다 오래 남아 있겠다는 느낌이 듭니다.
커피가 식어도
다시 데우지 않고,
메모가 비어 있어도
굳이 채우려 하지 않습니다.
아무 약속 없는 오후에는
생각도 서두르지 않습니다.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되고,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들이
왔다가 머물다
다시 사라지게 두는 시간.
그게
생각을 가장 자연스럽게
대하는 방식이라는 걸
요즘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건
빈 시간을 불안해하지 않게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채우지 않아도 괜찮고,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한 순간이
하루 속에 있어도 된다는 걸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
아무 약속 없는 오후가 지나가면
하루는 어느새 저녁을 향해 가 있습니다.
그 사이에 내가 한 일은 많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건 아닙니다.
요즘의 저는
그런 오후를
조용히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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